영화리뷰 / / 2022. 12. 11. 21:48

8월의 크리스마스(1998) : 간직하고 싶은 낭만 한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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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1998)

마음 따듯해지는 멜로 영화

변두리 사진관 노총각 정원(한석규)과 밝고 씩씩한 스무 살 다림(심은하)이 만나 생기는 특별한 감정을 통해 사랑과 죽음에 관해 그린 작품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개봉 당시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신인감독상, 여우주연상, 백상 예술대상 작품상 등등 여러 상을 휩쓸었던 작품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상업영화 최초로 재개봉된 작품이고 국내 로맨스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난 그 남자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정원. 아버지를 이어 사진관을 운영하는 20이고 싶은 30대 남자입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어느 날 살짝 열린 문틈에 눈이 부신 햇살이 비추고 동네 초등학교의 아침 조회를 알리는 방송으로 시작하는 평범한 하루지만 정원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묵묵히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에 다녀온 날 사진관에 예쁜 주차단속원이 너무 급하다며 들어옵니다. 동네 주차단속원인 그녀의 이름은 다림입니다. 재촉하는 다림과 한 박자 거절하는 정원. 약을 먹고 한숨 돌리고 나서야 정원은 토라져 사진관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다림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 건넵니다. 그렇게 평범해 보이지만 설렘이 가득한 솜사탕처럼 이들의 만남은 시작됩니다. 여름의 색이 짙어질수록 정원과 다림은 마주치는 날이 많아집니다. 그렇게 다림과 친해진 정원은 주유소에서도 길 가다가 도 그녀와 만납니다. 사진관에서 잠시 쉬어가도 되냐는 그녀에게 선풍기를 틀어 방향을 돌려줍니다. 함께 커피도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장난도 치며 두 사람 사이에는 점점 묘한 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비 오는 어느 날 카센터 앞에서 우연히 다림을 만난 정원은 우산을 씌워주는 대신 저녁에 술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정원을 향했던 우산의 방향이 정원이 우산을 넘겨받으며 다림을 향합니다. 이 장면에서 서로에 대한 호감이 전달되고 있는 것 같고 사랑으로 한걸음 나아가려는 듯합니다. 하지만 다림이 와야 할 시간에 들어오는 사람은 낮에 가족사진을 찍은 할머니. 독사진을 다시 찍고 싶다는 말의 뜻을 이해한 정원은 할머니의 사진을 찍으며 다시 현실을 마주합니다. 자신에게는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나타난 다림은 수줍어하며 말을 꺼냅니다. 서울랜드에서 일하는 친구가 공짜표를 준다고 했다며 은근슬쩍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입니다. 평범한 연인처럼 놀이공원도 가고 운동장에서 달리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원이 꺼낸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슬쩍 다림은 정원의 팔짱을 낍니다. 이 순간 멈칫하는 정원. 웃고 있지만 이야기는 맥이 끊기고 그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정원은 가족들과 밥을 먹고 함께 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이 떠나면 혼자 남을 아버지를 위해 미뤄둔 일들을 합니다. 혼자서도 비디오를 볼 수 있게 작동방법을 큼직하게 써서 벽에 붙여 놓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을 때 그제야 두려움과 직면합니다. 이불속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정원의 모습을 바라만 보는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건강이 악화되며 병원에 입원하면서 한동안 초원사진관의 문은 열 수 없게 됩니다. 아무 연락도 없이 한참을 닫혀있는 사진관에 편지를 끼워두고 결국 배신감과 미움을 참지 못하고 사진관에 돌을 던져 유리를 깹니다. 잠시 퇴원해 다림이 사진관에 끼워둔 편지를 읽고 물어물어 찾아간 새 근무지 앞 카페에 앉아 그녀의 일상을 몰래 바라볼 뿐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더 이상의 만남도 사랑도 모두 상대에게 상처만 주게 될까 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진관으로 돌아온 정원은 다림의 사진과 자신의 옛 모습이 담긴 앨범들을 한 장씩 넘겨보고 지그시 바라봅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옷차림을 다듬고 자리에 앉아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습니다. 시간은 흘러 코끝 시린 겨울이 오고 정원이 없는 사진관에 한층 성숙해진 다림이 찾아옵니다. 정원의 첫사랑 소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자신의 사진을 보고 다림은 수줍어하다 좋아하다 아련한 얼굴로 그렇게 사진관을 떠납니다. 정원은 다림에게 아픔이 아닌 사랑과 추억을 남겨주고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담담하고 잔잔하게

주인공 두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안타까운 사랑처럼 가장 반대적인 8월과 크리스마스를 붙여서 제목을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원이 운영하던 초원 사진관은 현재도 군산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죽음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달리 죽음과 이별을 슬픔보다 추억에 시선을 비춘 점이 신선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담담하고 잔잔하게 더 눈물이 많이 쏟아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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